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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에서 외우고 있는 사도신경, 외울 필요가 정말 있을까?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가 다스릴 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사도신경을 “왜” 외우고 계시나요?
오늘은 그리스도인이 “사도신경을 외워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사도신경이 “카톨릭의 신조” 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이전에 “로마신경(Roman Creed)”이라고 불리던 로마 교회가 만들어낸 “카톨릭의 신조”입니다.(신조란 굳게 믿고 따르는 생각이나 원칙을 말함) 로마카톨릭은 신도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는 대신 사도신경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것을 외우게 했는데, 그 이유는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형식적인 “카톨릭 교도”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된 지금도, 수많은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외우고 있는 이유는 이 누룩(거짓 교리)이 퍼졌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천되는 과정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 중 “지옥에 내려가시고”를 빼버리기도 했고 “거룩한 교회”를 “거룩한 공회(the Holy Catholic Church)”, 즉 “거룩한 카톨릭 교회”로 변개시키는 일도 자행했습니다.
“로마카톨릭”은 성경을 가지고 종교 행위를 하는 “가장 거대한 이단”이며, 사도신경은 그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두 번째 이유는 사도신경을 되풀이하는 일은 “헛된 반복”을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7). 헛된 반복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째는 의미가 없거나 틀린 말을 반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맞는 말이라 할지라도 헛되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유형이든 둘 다 옳지 못한 일입니다. 우리는 결코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헛된 반복은 “이교도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이 헛된 반복을 자행하는 이유는 주님께서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마 6:7) 기도에 있어서 헛된 반복은 기도하는 자의 믿음 없음에 대한 “표징”이며, “믿음 없음”은 주님께서 대단히 “불쾌히 여기시는” 죄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닮지 말라. 이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심이라.』(마 6: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카톨릭, 그리고 카톨릭에서 만들어 낸 비성경적인 신조를 따라 반복하는 한국 교회들은 사실 이교도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세 번째 이유는 사도신경은 “사도”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역사적으로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신조들을 짜깁기 해서 정리한 것인데 시기상으로 봤을 때 사도와 무관합니다.
4세기경에 활동한 “루피누스 티란니우스”(Rufinus Tyrannius, 345-410)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전 세계로 흩어져 복음을 전해야 할 열두 사도들이 서로 떨어져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관계로, 서로 다른 교리를 전할 위험성을 막기 위해 성령의 영감으로 각각 한 사람씩 하나의 조항을 말한 것을 모은 것이 사도신경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도신경이 12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추한 “단순한 추측”일 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거짓말”입니다.
사도들은 절대로 그런 것을 만든 적도 가르친 적도 암송한 적도 없습니다. 이처럼 사도신경은 전혀 사도와 상관없지만 카톨릭 자신들의 교리에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마귀의 계략입니다.
네 번째 이유는 사도신경이 “반성경적인 신조”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사도신경을 예배 때마다 반드시 암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그 안에 소위 “성경의 가르침”이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신경의 교리적 내용들은 결코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카톨릭 교회 교리문답>에 따른 거룩한 공교회의 실체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는 카톨릭 교회를 말합니다.(제830항)
“이것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로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이 교회가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유일한 교회임을 고백한다.”(제811항)
이것은 결코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의 개념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이 처음 작성될 때부터 거룩한 교회는 카톨릭 교회를 말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는다는 “사도신경의 본래 의미”를 보편적 교회나 공교회로 억지로 해석하는 것은 한국 교회가 로마카톨릭의 “아류”임을 자처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2)<카톨릭 교회 교리문답> 죄 사함의 실체
사도신경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사함 받는 것이 아니라 주교들과 사제들이 모든 죄들을 용서할 권세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제1461항)
“죄사함에 관한 로마카톨릭의 교리는 카톨릭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원의 완전한 수단을 얻는 길은... 그리스도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제816항)
“카톨릭 교회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세워졌음을 알고서도 그곳에 속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제846항)
“구원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사와(제129항), 많은 부가적인 행위들과 더불어 세례와 같은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제257항)
“그리스도의 뜻에 의해, 교회는 세례받은 자들의 죄들을 용서할 권세를 가지고 있다.”(제986항)
이러한 “비성경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이단이 아니라면 누가 이단이겠습니까? 구원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받을 수 있으며 여기에는 교회도, 사제도, 행위도 필요 없습니다(엡 2:8-9, 롬 10:9-10, 요 14:6, 롬 4:5).
3)<카톨릭 교회 교리문답>에 따른 성도의 교제의 실체
사도신경의 성도(saints)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카톨릭이 규정한 “죽은 성자들(saints)과 기도로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제828,957,2683항)
“교회는 성체를 통해 죽은 자와의 효과적인 교제를 하게 된다.”(제1689항)
“우리의 동료 순례자들과의 교제로 우리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처럼 성자들과의 교제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합류하게 된다.”(제957항)
여기서 말하는 로마카톨릭의 “성자”(saints)란 살아 있을 때 행한 선행으로 사후에 성자로 선언된 소수의 선택된 자들을 말합니다.
사도신경은 “얼핏 보면” 성경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경을 흉내낸 반성경적인 신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4)지옥에 내려가시고라는 표현에 대해
지금은 삭제해서 없어졌지만 “지옥에 내려가시고”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 표현은 아리안 신조(360년)와 아퀼레야 신조(390년), 베나티누스 폴투나투스의 신조(590년) 등에서 문구를 따온 것으로, A.D. 750년에 가서야 정착이 되었으며, 카톨릭은 이 교리를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를 가르치기 위해 써먹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는 사도신경을 가리켜 “우리 믿음의 핵심의 핵심”이라며 한국 교계가 삭제한 “지옥에 내려가시고”를 복원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반성경적인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카톨릭과 더불어 이단들에 관해 조심해야 할 것은 그들 또한 “교회, 구원, 동정녀”처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 “단어에 대한 정의”가 비성경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결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성경적인 의미”로 그 단어를 보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이유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터 럭크만 박사는 사도신경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누구 한 사람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성경을 거부하는 창녀, 곧 로마카톨릭 ‘정신의 산물’이자 ‘생산품’이다.
지난 2천여 년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변화 없이 입술로만 고백할 수 있게 만든 “신조”나 “교리 문답서” 따위를 만든 적이 없습니다. 또는 교회에서 그런 것들을 달달 외우게 하고 예배 때마다 반복하게 함으로써 교회 회원이 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개신교에서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은 그들이 “성경대로 믿지 않는 교인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징”이 됩니다. 많은 교회가 카톨릭처럼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이 비성경적인 것을 알았다면 당장 그 “만행”을 멈춰야 할 것입니다.
사탄은 지난 교회사 기간 동안 극심한 박해를 통해 복음의 확산을 막고 교회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방법을 사용하다가 그 방법을 포기하고 “유화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오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이 “이교도들과 믿음 없는 사람들”을 소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에 효과적으로 쓰였던 도구 중 하나가 바로 로마카톨릭의 신조인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을 외우는 교회가 명백히 “비성경적인 교회”라는 것을 아셨나요? 그렇다면 그곳에 다닐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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