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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을 위한 기회를 얻으려고 불의를 행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밥 존스 시니어밥 존스 시니어가 말했듯 옳은 일을 위한 기회를 얻고자 불의를 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의 역사 곳곳에서 “옳은 일을 위한 불의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교회를 유지하고 주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등 “무력수단”을 동원하거나 상황에 따라서 교회의 입장을 바꾸어 타협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자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평화” 곧 “이상적인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폭력이나 억압 같은 불의한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옳은 일” 이라고 하더라도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옳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반성경적인” 행보입니다. 우리는 목적이 결코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없음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점치는 영에 사로잡힌 어떤 소녀가 나옵니다. 그녀는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종들이며 구원의 길을 전한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행 16:16-18). 바울은 얼마든지 계속 그렇게 증거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었지만, 그 소녀에게 깃들어있던 더러운 영을 내쫓았는데, 이는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불의한 영에 의해 증거 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는 마귀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의 고백”(약 2:19)을 꾸짖으시며 마귀들이 증거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냥 내버려 둔다면 예수님께서 마귀들과 함께 일하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간증을 망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증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창 14:23, 대하 25:6-10).
마귀가 했던 말 자체는 “옳은 말”이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리는 “선한 목적”을 위해서 “마귀의 입”이라는 “악한 수단”을 쓰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역에는 마귀와 같이 “통로의 부정함, 불의한 방법들”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는 사무엘하 6장에 등장하는 웃사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궤가 흔들려 “떨어질 것” 같아서 손으로 언약궤를 잡았습니다. 그것은 “옳은 일을 위해 불가피한” 곧 “궤를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행동을 “죄로 여기시고” 그를 죽이셨습니다. 왜냐하면 궤를 만지는 일은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민 4:15).
사실 이 일이 일어난 원인에는 “애초에” 궤를 “성경적으로” 운반하지 않은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궤는 반드시 “어깨 ”에 메고 이동시켜야 했는데(출 25:14-15) “수레” 를 이용한 것입니다(삼하 6:3). 수레를 이용하는 것이 설령 “효율적”으로 보이고, 또 궤를 보호하는 것이 “선한 일”처럼 보였을지라도, 그것들은 순전히 “인간적인 생각”이었을 뿐, 하나님의 법(수단)을 어긴 것입니다. 인간에게 아무리 옳게 보이고 또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일에 있어서 불의나 편법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잠 14:12).
마가복음 11장에는 예물에 관한 불의가 등장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기록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써야 할 돈” 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선언함으로써 “효도의 의무”를 면제받으려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이 “옳게 보일 수” 있으나, 실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돈을 쓴 것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7:13).
어떤 성도는 교회 행사에 너무나 “충실하기 위해” 집안일들을 내팽겨치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 일을 정당화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자주 모이는 일에 힘쓰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기 위해 가족을 포함한 집안의 생활들이 망가지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일이 믿음을 부인한 것이며,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어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을 걸겠다고 하는 나머지 주구장창 성경만 읽을 뿐, 기도하지도 않고, 밖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도 않으며, 심지어는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물론 “옳은 일”이지만, 그로 인해 마땅히 해야 할 다른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그가 불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옳은 일을 위해 치우쳐진 의무들은 명백한 “불의”입니다.
어떤 성도는 예배에 지각했다고 신호를 위반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도, 제 시각에 도착하는 일도 “옳은 일”이지만, 그로 인해 “신호를 위반하는 일”(불의)을 한다면 그는 옳은 일을 위해 옳지 못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전수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라고 하시더라.
(막 7:13)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와 같은 많은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사실 대부분 “옳은 일로 가장한”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위한 불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옳은 일을 위해 불의를 서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100%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불의로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나 주가 공의를 사랑하고, 내가 번제를 위해 강도질하는 것을 미워함이니 내가 진리로 그들의 일을 인도하고, 내가 그들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사 61:8)
옳은 일을 위한 기회를 얻으려고 불의를 행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밥 존스 시니어우리는 오늘 이 문장을 보면서 두 가지 진리를 배웠습니다. 첫째는 결코 “자기 생각에 옳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수단과 방법이 잘못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이 문장을 적용시켜 보면 많은 불의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써 더 이상 “옳은 일을 위한 옳지 못한 죄”를 짓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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