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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103절 말씀 배경화면입니다. 말씀보존학회 네이버 블로그에 접속하면 PC/모바일 모두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정녕,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당신은 말씀을 “맛볼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은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죽었기에 신체의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없고, 미각을 느낄 수도 없는 것은 너무 뻔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 죽기 전에는 누구나 여러 음식들을 먹으며 살았고 그 음식 맛을 느꼈을 것입니다. 소위 대식가여서 많은 음식을 먹었을 수도 있고, 미식가처럼 남다른 미각을 소유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은 뒤에는 그 어떤 맛들도 더 이상 무의미합니다.
사람과 맛은 사실 떼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썩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음식은 맛을 소유하고 있기에,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맛”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 맛을 느끼는 시간에는 누군가와 함께 할 수도 있고, 혼자일 때도 있습니다. 가령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을 한다거나, 고객과 거래를 할 때 차를 마신다거나, 친구를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거나, 가족들과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인생은 수많은 맛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만족스러운 맛”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대게 식사는 즐거운 맛의 자리이지만, 그 자리가 즐겁지 못하고 의무적이고 힘든 자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늙거나, 병들어 아플 때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곤 합니다.
병에 깊이 들면 식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병든 사람에게는 식사 시간이 그저 치료의 일환일 뿐 결코 즐겁고 기대되는 시간이 되지는 않습니다. 병에 들면 맛에 대한 혀의 감각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감각기관이 쇠퇴하는 노인들에게서도 그런 현상이 발견되곤 하는데, 특히 죽음에 거의 임박한 노인에게는 맛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감각이 됩니다.
죽은 사람은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 또는 병든 사람은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이는 오늘 말씀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성도가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이요, 그 음식에도 “맛”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빵(눅 4:4), 고기(히 5:12-14), 우유(벧전 2:2), 꿀(시 119:103), 사과(잠 25:11)와 같은 음식으로 표현되는데, 이 음식에도 마찬가지로 맛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즉 “성경이라는 영적 음식”을 먹을 때면 성도들은 그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살아 있는” 성도는 이 순간 "꿀맛 같은" 달콤한 맛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그를 묵상함이 달콤하리니 내가 주 안에서 즐거워하리로다.』(시 104:34)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 달콤함을 누릴 수 있기에,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날마다 누릴 수 있는 커다란 특권입니다.
하지만 구원받았다고 하더라도, 맛을 느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또한 병들거나, 죽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병에 들어버린 사람에게는 말씀이 꿀이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말씀을 읽을 때 “꿀같은 맛”을 느낄 수 없다면, 또는 말씀에서 느끼는 맛이 “이전보다 못하다면” 자신이 영적으로 병든 상태에 있음을 자각해야만 합니다.그런 사람은 반드시 “맛의 기쁨”을 되찾아야만 하는데, 말하자면 영적 상태를 회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영적 상태를 회복하려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읽는 것이 “즐겁지 못한 현 상태”를 모두 말씀드리고, 그 맛을 회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이 따분하고, 시시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세상의 화려한 맛들” 즉 “세상 정욕들”을 모두 버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만 합니다(요일 1:8-9). 세상과 죄 가운데 뒹구는 성도는 결코 말씀의 맛을 누릴 수 없습니다.
또한 말씀에서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다면 애당초 “구원을 받지 않은 것”이니 구원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고전 2:14)
말씀에서 느껴지는 맛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판단하는 “시금석”입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꿀맛이, 어떤 사람에게는 무맛인 것은 “영적인 상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게 식사 후에 "식사 많이 하셨어요?"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밥을 많이 먹었냐고 묻지 않고 "Have you enjoyed it?"이라고 묻습니다. 식사를 즐겼냐고 묻는 것입니다. 영적인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먹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욥 23:12), 또 많이 먹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즐겁게” 먹는 것입니다. 단 한 구절을 읽어도 그 말씀을 씹고 또 씹어서 단맛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영적인 건강에 유익합니다.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정녕,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시편 119편 103절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영적 상태를 확인하고, 회개하여 말씀의 꿀맛을 누리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어쩌면, 이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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