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도적인 순종의 가치

    2026. 3. 8.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나는 주님 앞에서 어떤 놀라운 이적을 행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한다

    -마틴 루터-

     

    표적(Sign)이나 이적(Wonder), 또는 기적(Miracle)의 차이를 아시나요? 주로 같은 상황에서 등장하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의미의 용어들입니다. 

    이적, 기적은 비슷한 말로써 놀라운 행적을 묘사하는 용어지만 표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표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하게 다루시는 방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적이나 기적은 말 그대로 놀라운 일, 기이한 일,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역사 등을 가리켜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집트에서 일어난 열 재앙, 태양이 멈춘 사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일,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일 등을 기적이나 이적이라고 말합니다. 이적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 그분의 권위와 신성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표적은 다릅니다. 표적은 이적보다 그 범위가 넓은데, 표적 안에는 이적도 포함될 때가 있지만, 이적이 아닌 표적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 것, 병자들에게 안수하여 치유시킴 같은 것들은 이적이라고도 불려지고, 표적이라고도 불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 속에 포함되어 있는 안식일은 표적이라고 불리긴 해도 그것은 이적이나 기적은 아닙니다(겔 20:20).

     

    표적은 그것을 행하는 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증명하는 도구로, 영어 표현 sign처럼 표시, 징조 등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말씀하시거나 주장하시고자 할 때 한 표적(sign)을 보이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나 언약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표적과 더불어 시작된 민족입니다.  출애굽기 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집트로 보내려고 하실 때, 모세는 그들이 자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출4:1). 말하자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막대기로 뱀을 만들어 보이시고, 모세의 손에 문둥병을 발하게 하셨다가 치유하셨는데, 이 두 가지 이적들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셨다는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수많은 표적들로 인도하셨습니다(판 6:17, 사 38:7, 사 7:14, 사 8:18, 사 19:20, 사 55:13). 그리고 이처럼 수많은 표적들로 인도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자연스럽게 표적을 구하는 민족이 됩니다(고전 1:22).

     

    순종이라는 제목의 글을 이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마틴 루터의 명언을 더 실감나게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마틴 루터는 수많은 이적들커다란 재앙을 불러 일으키고, 태양을 멈추고, 병자를 치유하고, 수천 명을 먹이는 그런 일들 보다도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순종 보다는 무언가 특별하거나 위대한 일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데, 이는 남들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심리를 기반으로 스스로 이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집회들에서 치유의 쇼들을 벌이지만, 말 그대로 보이기 위한 쇼(show)일뿐 거짓이며,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순종의 가치를 모르는 위선자들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이란 순순히 복종함어떤 말에 기꺼이 따르는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선생의 음성에(잠 5:12,13), 부모에게(골 3:20), 주인에게(벧전 2:18), 권세자에게(롬 13:1,2) 순종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창 26:5).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삼상 3:9).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사람에게 능력을 주셔서 어떤 이적들을 행하게 하실 수 있지만, 순종하지 않는 이적, 순종없는 이적 보다, 순종하는 평범한 일을 원하십니다. 사실 순종은 그 어떤 일보다 위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에서 가장 높으신 분의 말씀을 내 몸으로 직접 실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가치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순종 자체가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멸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그들에 속한 모든 것, 곧 남자나 여자나, 어린 아기이거나, 동물이거나 상관없이 모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삼상 15:3). 하지만 사울은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 두었고, 쓸모 있어 보이는 동물들을 남겨 두었습니다. 제사를 드린다는 것을 핑계로 말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기를 “주께서 번제와 희생제를 주의 음성에 복종하는 것만큼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복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경청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나이다.』(삼상 15:23)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사실 사울은 말씀에 순종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실속을 챙기는 행위를 했습니다. 주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도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한 것입니다. 오로지 사업에 모든 관심이 있으면서 사업을 번성케 해주시면해 주시면 물질로 섬기겠다는 일, 세상에서 인정받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목표면서 그렇게 해주시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는 일처럼 주님을 위하는 척하는 척순종은 주님께서 크게 불쾌히 여기는 일입니다(삼상 15:23).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일을 크게 기뻐하십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그 어떤 명령에 순종했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순종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며, 누구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같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순종을 통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두 번째로 순종이 가치 있는 이유는 순종했을 때 우리가 매우 가치 있는 것들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순종해야 할 말씀들로 가득하지만,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순종은 복음에 순종하는 것입니다(롬 6:17-18). 복음에 순종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지옥에 가야 마땅했던 죄인이 지옥의 형벌로부터 면제되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됩니다.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순종은 가치 있는 결과를 얻게 해줍니다. 애초에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습니다(롬 5:19). 우리는 그분의 순종으로부터 시작된 구원을 얻은 사람들로서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성도들에게 많은 복을 부어 주십니다. 초림 당시 한 여인이 예수님께 당신을 낳은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눅 11:27).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느니라.”고 하시더라.』(눅 11:28)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큰 복들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요 13:17). 또 한 가지는 순종할 때 우리 삶에 “열매들”이 맺힌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면, “구령의 열매”가 맺히는데, 마치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었듯, 누군가가 우리의 순종을 통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 앞에 순종하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순종의 본”이 되기도 하는데, 이 모습을 보는 누군가가 도전을 받고 또 한 사람의 “순종의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순종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모두 보상해주시는 분이십니다(히 11:6). 다섯 가지 면류관, 금, 은, 보석, 통치권 등의 영원한 상급이 쌓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압도적인 순종의 가치도 알았고, 순종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순종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에 관한 답을 열왕기상 17장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아합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삼 년 반 동안 이스라엘을 기근으로 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 과부에게는 엘리야 선지자를 부양하라는 명령을, 엘리야에게는 사르밧으로 가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왕상 17:9).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르밧으로 간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약간의 물과 빵 한 조각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을 대접할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한 끼 분량의 음식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한 줌의 가루와 기름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고 죽을 생각이었습니다(왕상 17:12).

     

    이 말을 들은 엘리야는 그녀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먼저 자신을 위해서과자를 만들어 오라고 했던 것입니다(왕상 17:13). 하지만 이 과부는 엘리야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하나님께서 그 명령에 순종한 과부에게 복을 주셔서 그녀와 아들은 기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왕상 17:15, 16). 이것은 『그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하니』순종하니 주어졌던 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의 결말을 봤기에 고개를 끄덕일 뿐 사실 복이 주어지기 전의 상황만 본다면 이보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기를 위해 먼저 만들어오라는 지시만 했을 뿐, 그렇게 하면 복을 주신다거나, 놀라운 방법으로 기근을 해결해 주실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순종이란 어떠한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환경에 탓하지 않고 묵묵히 따르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따라야 합니다. 만약 과부가 이 사람은 왜 자기만 생각하지? 나와 아들은 죽어도 좋다는 건가?라는 식의 인본주의적인 생각이 앞섰다면, 엘리야의 명령에 결코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종의 권위에 복종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당면한 현실들 가운데 그 일들을 불평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인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순종은 즉시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나중에 순종하겠다고 말합니다. 좀더 준비가 되면 복음을 전하겠다, 졸업만 하고 신학을 공부하겠다, 회사 일이 안정되고 나면 주님의 일을 하겠다, 아이가 충분히 자라고 나서 시작하겠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때늦은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언제까지 준비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때로는 먼저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는 마른 땅이 되게 한 후에 건너게 하셨지만, 요단강은 달랐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 강물에 들어가는 순종을 보여야 했습니다. 요단강은 사람이 익사할 정도로 강둑을 넘쳐흐르는 물이 있었습니다(수 4:18). 하지만 그 물들을 보고도 제사장들은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강물에 들어가니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가르셔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수 3:15,16).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전에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하니 복을 받았던 과부처럼 말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 즉시 그물들을 버려두고 주를 따라갔습니다(마 4:19-20).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마 4:21-22). 순종은 즉시 해야 합니다. 순종에는 머뭇거림이나 변명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순종에 불필요한 것이라면 어부들이 보였듯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성경을 공부하라는 명령에(딤후 2:15). 기도하라는 명령에(눅 11:9). 모든 일에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명령에(시 37:5).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는 명령에(벧전 1:15,16). 성별하라는 명령에(롬 16:17). 몸을 드리라는 명령에(롬 12:1). 영적 전쟁을 싸우라는 명령에(엡 6:11). 열심히 주를 섬기라는 명령에(롬 12:11).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라는 명령에(빌 3:20) 즉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설교자가 순종의 의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성경을 통해 내가 돌담을 뛰어넘어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나는 그대로 순종할 것이다. 왜냐하면 뛰어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순종에서 시작해서(롬 6:17-18), 수많은 순종들로 이루어지며(딤전 6:11-14), 순종으로 끝납니다(딤후 4:7).

     

    순종은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며, 우리는 결코 순종하는 일보다 위대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혹은 어떤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미루고 있습니까?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소중한 압도적인 순종의 가치를 알았다면, 이제는 순종해야 할 때입니다. 순종의 사람이었던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나이다.’』(삼상 3:9) 사무엘은 어린 나이부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늙어 죽기까지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다는 간증을 남겼습니다(삼상 12:2-3). 인간적인 생각이나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순종을 막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처럼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주님 앞에서 어떤 놀라운 이적을 행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한다.
    -마틴 루터-

     

     

    오늘의 이 문장이 그동안 순종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순종의 가치를 알며, 직접 몸으로 순종들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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