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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킹제임스성경 잠언 18장 10절 말씀. 말씀보존학회 네이버 블로그에 접속하면 PC/모바일 배경화면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 이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최초의 이름이자, 영원히 남아 있을 이름이며, 가장 위대한 이름인 “하나님”입니다. 최초의 책인 성경의 첫 구절에는 최초의 이름인 하나님이 언급됩니다(창 1:1).
우리가 보는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늘도 땅도, 해도 달도, 공기도 중력도, 구름도 번개도, 나무와 꽃도, 동물과 사람도 모두 한 이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 첫 사람의 이름을 아담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담으로부터 수많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현재는 수십억 개가 넘는 이름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이름들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이름에는 어느정도의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친구나 가족, 연인 등의 이름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누군가는 그 이름만 떠올려도 기분이 즉시 좋아지는가 하면, 두려울 수도 있고,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름에는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빌”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친구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친구입니다. 그는 내가 돈이 없을 때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돈을 값없이 주었고, 내가 근심이 가득할 때 옆에서 위로해주었으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입시나 취직, 결혼 생활 같은 인생의 구비구비에 있어서 조언이 필요할 때 적합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내가 엇나갈 때면 옆에서 바로 잡아 주기도 하고, 내 모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입이 무겁고, 든든한 친구이며, 힘든 상황에도 웃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친구입니다. 또한 아주 똑똑한 친구라서 모르는 것이 무엇이든, 분야에 상관없이 가르쳐 줄 수 있는 친구입니다. 만약 우리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수많은 “빌들”을 친구로 두었거나, 두고 싶어 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유능한 친구를 가장 가까이에 두고도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도 않거나, 그 존재를 모릅니다. 수많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신의 하나님” 곧 “친구되어주시는 하나님”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정말로 친구처럼 지냈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렸고(약 2:23), 모세는 주님과 사람이 자기 친구와 말하는 것같이 대면하여 대화를 했습니다(출 33:11). 신약 교회시대인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게 되는데,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는 것입니다(고전 6:19).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그 어떤 친구들보다도 더욱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이름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들을 통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고, 그 이름과 뜻을 기억함으로 그 이름을 가지신 분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이름들을 가지고 계시며, 그 이름은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 이름을 신뢰한 삶은 무엇이 다를까요?
잠언 18장 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로운 자는 그 안으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주의 이름은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망대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주의 이름으로 달려가서 완전한 안전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이름들에 대해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하나님(God)을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고 합니다. 이는 “서약으로 자신을 동여매는 강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창세기 1장에서 그 첫 구절에서부터 창조주의 강한 면모를 계시하고 있으며 구약 전체를 통틀어 약 2,500회 언급됩니다.
2)주(LORD), 곧 여호와는 “자신을 계시하시는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을 계시하는데, 이는 최초의 인류가 죄를 지었을 때 그들에게 짐승의 피를 흘려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분이 바로 “여호와 엘로힘”(『주 하나님』, 창 3:21)이셨기 때문입니다.인간을 구속하시는 것과 관련된 여호와의 사역은 그 이름과 결합된 다른 아홉 가지 이름들로도 계시됩니다. 즉 “여호와 이레”(주께서 예비하시리라, 창 22:13,14), “여호와 라파”(치유하시는 주, 출 15:26), “여호와 닛시”(주는 우리의 깃발, 출 17:8-16), “여호와 샬롬”(주는 우리의 화평, 판 6:24), “여호와 사바오스”(만군의 주, 삼상 1:3), “여호와 엘리온”(지극히 높으신 주, 시 7:17), “여호와 라아”(주는 나의 목자, 시 23:1-6), “여호와 칫케누”(주 우리의 의, 렘 23:6), “여호와 샴마”(주께서 거기 계시다, 겔 48:35)가 바로 그 이름들입니다.
3)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곧 “엘 엘리온”은 창세기 14장의 멜키세덱을 통해 최초로 계시됩니다. 멜키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18절)으로서,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면서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람을 복 주시옵소서.』(19절)라고 기도했습니다. 따라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소유주로서 하늘과 땅 모두에서 막강한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엘 엘리온”이라는 이름의 권세가 온 세상에 걸쳐 있는 것입니다.
4)주(Lord), 곧 히브리어로 “아도나이”는 “섬김의 대상으로서의 주인”을 뜻합니다. “아도나이”와 그분의 백성 간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인데, 우리는 위대한 주인의 보호 아래 있는 종인 것입니다.
5)전능한 하나님, 곧 “엘 샤다이”는 “가슴”을 뜻하는 “샤드”에서 나온 이름으로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의 가슴”을 연상시킵니다. 따라서 “전능한 하나님”이란 이름은 성도들에게 힘을 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욥기에서 31회 언급되는데,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정련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계시합니다.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자신의 이름들을 기록해놓으셨고, 자신을 그 이름들로 계시하십니다. 계시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모른다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는 헛된 섬김밖에 할 수 없게 됩니다. 반면 성경을 읽어나가며 주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아갈수록 그는 성경대로 정확히 섬겨나갈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구원자,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부터 계신 『말씀』(요 1:1),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신 『독생자』(요 3:16), 『하나님의 아들』(눅 1:35),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빵』(요 6:33), 첫 사람 아담이 망쳐 놓은 것을 회복하신 『마지막 아담』(고전 15:45), 신부인 교회를 휴거시키러 오실 『신랑』(요 3:29), 인류의 구원을 위해 뻗은 『주의 팔』(사 51:9; 53:1), 죄지은 성도들을 위한 『변호인』(요일 2:1), 교회가 세워져 있는 굳건한 『반석』(고전 10:4), 기록된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알파와 오메가』(계 1:8), 어려워서 못 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계 1:8),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아멘』(계 3:14), 초림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도』(히 3:1), 현 교회 시대의 『대제사장』(히 3:1), 다시 오실 『유일하신 통치자』(딤전 6:15), 『화평의 통치자』(사 9:6),『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계 19:16),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신 『경이로운 분... 상담자... 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사 9:6), 영원한 『빛』(요 1:9)이신 『빛나는 새벽별』(계 22:16)이십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름들로 자신을 계시하시는데 그 각각의 이름에는 독특한 교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 “이름들의 책”입니다(대상 1-9장, 롬 16장 등). 단연 그 이름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이름들보다 그분의 아들의 이름인 “예수”를 가장 높이셨습니다(빌 2:9,10, 엡 1:21,22).우리는 그 이름을 가지신 분을 우리 안에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은 성도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며(갈 1:24), 우리는 그분께 언제든 그 이름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무언가를 받을 수 있고(요 16:24), 화평을 얻을 수 있습니다(빌 4:6-7). 그분의 이름을 통해 진리와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며(요 1:16-17),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요 15:11). 그분은 “인자”라는 이름도 가지셨는데, 그분도 사람의 아들로서 이 땅에서 사셨기에, 같은 사람이신 우리를 동정하실 수 있습니다(히 5:2). 이 이름을 가지신 우리의 친구는 앞서 언급했던 “빌”과는 “비할 수 없이” 더욱 자비로우시며,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어려워서 못할 일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어지럽고 혼란스럽습니까?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 AI, 전염병과 난치병을 포함한 여러 가지 질병들, 기근, 가뭄이나 홍수,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각종 자연재해, 원전 사고, 열차 탈선, 비행기 추락, 건물 붕괴, 대형 화재, 교통사고, 살인, 강간, 학교 폭력, 왕따 등의 사건 사고들, 대학 입시나 취직 같은 인생 전반에 관한 마음속 근심과 걱정들, 여러 가지 인간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소외감, 시험과 역경 등 우리 앞에는 온갖 위험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굳건한 피난처』(시 71:7)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안전을 보장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화평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서 언급했듯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기에 “안전함들”이 필요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건설하는 처음 1년 동안 무려 23명이나 추락사했습니다. 건설회사는 안전을 위해 거대한 그물망을 설치했고, 노동자들이 추락하는 사고가 있어도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전을 위해 설치한 그물망은 추락사를 방지하는 것 외에 뜻하지 않은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물망 설치 이전보다 공사 진행이 20퍼센트나 빠르게 진척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혹시라도 공사 중에 발을 헛디뎌 추락할지라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어 건설 노동자들의 동작이 빨라지고 작업 능률이 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노동자들을 압박하여 작업 효율이 떨어졌지만, 그물망으로 인해 그런 두려움이 제거되자 작업 효율이 향상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완전한 안전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다양한 보장”을 기록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구원의 안전함을 보장하셨습니다. 마치 절대로 추락사할 일이 없을 거대한 그물망이 설치된 것처럼 구원을 절대 잃어버릴 수 없도록 보장하신 것입니다(롬 8:38-39, 요 10:28).
생활의 필요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채워주신다고 보장하셨습니다(눅 12:28-29, 마 6:31-33).
반면 세상 사람들은 주의 이름을 모르기에 안전함도 화평함도 없습니다. 위에 언급한 온갖 재난들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것인데, 특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평생을 보내는 것입니다(히 2:14). 사실상 세상 사람들은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순식간에 죽음이 찾아 와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눅 13:3, 눅 12:20).
세상에는 꽤나 잘나고 유명한 이름들이 있지만, 세상의 이름들은 결코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없는 형편없는 이름들입니다. 교황도, 마리아도, 마호메트도, 크리슈나도, 석가모니도, 어떤 종교 지도자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돈도, 명예도, 강한 군대도, 핵무기도, 유능한 정치인이나 과학자, 철학자 또 경제인도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안전은 오로지 “주님”만이 보장해 주실 수 있으며, 그에 따른 화평도 주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주의 이름이라는 견고한 망대로 달려가면 됩니다. 이것은 곧 주님 손에 붙들리고(시 119:117), 주님의 말씀에 경청하며(잠 1:33), 주님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잠 29:25).
언제나 가장 안전한 곳은 주의 이름이 함께하는 곳이었고, 가장 위험한 곳은 주의 이름이 함께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것이 아무리 크고, 위험하더라도, 결코 견고한 망대를 무너트릴 수는 없습니다. 그 망대는 너무나도 견고해서 흔들림이 없으며, 상처를 입거나, 부서질 일이 없습니다. 어떤 공격에도 망대 자체에는 전혀 손상이 없는 것인데, 이는 그 망대 속에 들어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안전을 보장하실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울이 그랬듯, 마음이 조급하게 되어 그분을 의심하게 될 때가 있지만, 그저 믿고 기다리면 됩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이야기를 통해 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엘리야는 사악한 왕 아합 앞에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저주를 선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크릿 시냇가에 숨기셨습니다. 아합은 혈안이 되어 엘리야를 찾았고, 사람을 보내지 않은 민족이나 왕국이 없을 정도였습니다(왕상 18:10). 하지만 나라의 군대를 동원해도 엘리야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숨기셨고, 양식을 공급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음식을 공급받은 방법이 특이했습니다. 까마귀라는 새를 통해 음식을 공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까마귀를 쓰신 이유는 크릿 시냇가에서 아무에게도 의심받지 않으면서 은밀하게 음식을 공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사람을 쓰셨다면 발각될 우려가 있었겠지만, 그 지역에 사는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광야로 날아가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분의 사람인 엘리야를 보호하셨듯 우리 또한 하나님의 방법대로 보호하실 것입니다. 방법은 달라도 중요한 것은 우리는 같은 이름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망대”와 “같은 망대”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의 이름의 역사가 담긴 책인데 우리는 그 책을 통해 “망대의 안전함”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어느 날 프랑스 파리의 정신과 병원에 한 청년이 우울증을 호소하며 찾아왔습니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그와 상담을 하다가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그렇게 방 안에만 계시지 말고 밖에 나가서 그 유명한 희극 배우 그리말디의 쇼를 보십시오. 그 쇼를 보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달라 보일 것입니다.” 청년은 의사의 권고에 아무 대답도 안하고 조용히 병원을 나서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선생님, 내가 바로 그 희극 배우 그리말디입니다.”세상은 우리가 직면하는 여러 어려움에 대해 세상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마치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속임수에 넘어가 주의 이름이 아닌 “인간의 이름들”을 의지해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유다 왕 아사는 한때 다윗처럼 하나님을 잘 믿고 나라를 개혁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이방 신들의 산당을 없애고 온갖 우상과 형상들과 아세라들을 찍어 부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철저히 지키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사왕에게 평화를 주셨고, 그의 치리 35년간은 전쟁 대신 평화와 번영을 주셨습니다. 에디오피아 왕이 병거 3백 대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공격해 왔을 때도 그 전쟁을 하나님께서 대신해 주셨습니다. 아사왕은 고작 “28만 군사”로 백만 대군과의 싸움을 앞에 두고도 겁내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주여, 많은 수로든지 힘이 없는 자들로든지, 주께서 도와주시는 데는 아무것도 아니니이다.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는 우리가 주를 의지하며 주의 이름으로 이 무리를 대적하러 감이니이다. 오 주여,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소서』(대하 14:11).
아사왕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에디오피아의 백만 대군을 치셨습니다. 적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고 아사왕의 군대는 그 뒤를 추격하며 탈취물이나 거두면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는 평화와 번영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그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대하 16:2). 결국 그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전쟁들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대하 16:9). 또한 그는 발에 질병이 생겨 심히 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런데도 그가 병이 들었을 때, 주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사들에게 구하였더라.” 라고 말씀합니다(대하 16:12). 아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사람을 신뢰했다는 “형편없는 간증”을 남긴 채로 “형편없는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며 죽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아사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기보다 사람의 이름을 신뢰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원하시며(렘 17:5), 그분의 이름 안에만 있는 참된 화평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성경을 펼쳐서 그분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분의 “이름에 담긴 의미들 그대로” 행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과거뿐 아니라 그 이름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앞으로 있을 미래까지도 그 이름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로운 자는 그 안으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이 말씀은 기록되었던 3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주의 이름에는 안전함이 있습니다. 주의 이름에는 화평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주의 이름을 신뢰함으로, 성경 말씀을 신뢰함으로 견고한 망대가 주는 안전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언젠가 자주 남들 앞에 서야 하는 한 설교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약하고 자랑할 게 없는 연약한 사람이라서 하나님께로 와서 숨었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너무 약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숨어든 사람이에요” 만약 자신의 인생 가운데 두려움이 생겼다면 곧장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숨어 들어가 안전함과 담대함을 누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거기에 문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주의 이름을 마음속에 새기고, 그 견고한 망대 속으로 들어가서 안전함을 얻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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