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 최우선 순위로 두지 말 것

    2026. 3. 11.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내 육신의 필요, 그리고 육신적 충동과 욕구가 내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 p.228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8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의 인생은 똑같지 않습니다. 이는 사람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선순위란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엇이 덜 중요한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인생에서 올바른 우선순위를 세워놓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령 한참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학생이 우선순위가 게임이라면 부모가 통제하지 않는 이상 그 학생은 게임에 지나친 시간을 사용하게 됩니다. 게다가 공부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면 더더욱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나이와 성별, 직업, 위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덜 중요한가 하는 우선순위를 올바로 정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우선순위에 따라서 이 땅에서의 우리의 영적 상태나 행복이 달라지고, 저 하늘에서 받게 될 상급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필립 켈러는 그의 저서에 기록한 문장을 통해 명확한 우선순위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육신의 필요나, 육신적 충동과 욕구는 최우선 순위에 두어서는 안 될 "덜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와 관련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고 말하며 염려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런 모든 것이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오히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마 6:31-33)

     

    우리의 육신의 배고픔이나 목마름 같은 필요를 채우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선순위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최우선의 자리에 모셔놓고 행해야 합니다. 육신의 필요는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수 있고, 또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올바른 우선순위에 따라 살아가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무엇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하기 원하지는지 기도로 묻고 성경에서 찾고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심사가 있지만, 나 자신의 관심사 위에 하나님의 관심사를 올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심는 대로 거둔다는 추수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갈 6:7). 이것을 달리 말하면 "우선순위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우리가 우선순위로 둔 그 삶에 따라 어떤 사람은 육신적인 것을 심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영적인 것을 심을 것입니다. 『자신의 육신에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에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사도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좋은 본을 남겼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손실"로 여겼고, 그것들을 마치 "배설물"처럼 생각했습니다(빌 3:7-8). 그리고 오직 저 하늘 위에 세워진 푯대, 곧 부르심의 상만을 정확히 쳐다보고 달려갔습니다(빌 3:13-14). 그는 정확히 인생의 우선순위가 정립되어 있었고, 그 우선순위에 따라 살아간 결과 믿음의 경주를 훌륭히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올바른 것을 심었고, 좋은 것을 거두었습니다. 올바른 우선순위에 따라 살아간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고귀한 하늘의 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라.』(딤후 4:7-8)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마치 "손해보는 삶"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보다 나를 위하는 분이시며, 나에게 무엇이 최선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편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로 두는 것은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해야만 합니다(막 12:30). 마지막 때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딤후 3:1-4). 사람의 우선순위를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자신의 육신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 목숨, 내 안락, 내 가족, 내 수입, 내 사업" 같은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왕은 오늘날 육신적인 우선순위를 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경배 장소로 허락하셨던 곳은 예루살렘의 성전이었습니다. 제사장과 율법에 입각한 제사 규례가 있는 "그곳에서만" 희생제사와 명절을 지켜야 했고 그 외 산당들과 제단들은 "허가되지 않은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나뉘자 북왕국의 여로보암왕이 "제사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겠다고 나서기 시작합니다(왕상 12:28). 경배드리러 "굳이 유다로 올라가지 말고", 가까운 벧엘에 경배 장소를 마련했으니 와서 금송아지에게 경배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북왕국에서는 율법이 멸시당했고 산당들은 고질적인 우상 숭배 장소가 되었으며, 그들은 결국 멸망해서 앗시리아로 사로잡혀 가는 날까지 금송아지 숭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왕하 17:22). 편리함을 위해 원칙을 버리는 것, 내가 중요시 여기는 우선순위를 위해 말씀을 어기는 일은 매우 무서운 일을 초래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편리하게" 집에서 "온라인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교인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예배에도 분명한 원칙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롬 12:1).

     

    올바른 우선순위에 따라 살아가려면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불필요한 일들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영적인 것이 육적인 것에 앞설 때 올바른 우선순위가 정해집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육신의 필요만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의 인생에서 복을 빼앗 가시기도 하십니다. 이를테면 학개 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은 대로 수확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많이 심었으나 적게 거두었고, 먹고 마셔도 만족할 수 없었으며, 삯을 받아도 어디론가 다 새나가 버렸습니다. 열심히 수고하고도 열매를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든지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유념하여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다양한 원인들이 있지만 자신의 잘못된 우선순위 때문이 아닌지 돌아봐야만 합니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어찌된 일이냐? 이는 내 집이 황폐하였음이니, 너희가 각기 자기 집으로 달려갔느니라. 그러므로 너희 위의 하늘은 이슬을 멈추었고, 땅은 그 산물을 멈추었도다』(학 1:9,10).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다 되었는데도 "각자 자기 집만" 짓기에 바빴고, 하나님께서는 가뭄을 보내셔서 그들의 수고가 헛되게 만드셨습니다.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을 제쳐두고 자신의 일만 돌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할 때,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결코 자기 자신이 그 자리를 대체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후 5:15)

     

    「내 육신의 필요, 그리고 육신적 충동과 욕구가 내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 p.228)

     

    만약 자신의 삶에 우선순위가 잘못 정해져 있었다면, 오늘의 문장을 통해 다시금 자신의 우선순위를 되돌아보고 하나님과 그분의 일을 최우선 순위로 두게 되는 소중한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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